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문단 편집) ===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시대 === 서기 41년 가이우스 암살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문이 멸문한 이후,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남자혈육 클라우디우스의 집권(서기 41년)부터 그의 사위, 외종손, 양자 네로의 몰락(서기 68년)까지를 묶어 언급하는 시대다. 클라우디우스의 법적 성씨가 율리우스가 아닌 클라우디우스인 까닭에 같은 집안임에도 앞의 세 황제와 달리 이 시대 황제들의 성씨는 클라우디우스이다. 클라우디우스 시대부터 네로 시대까지의 기간은 율리우스 가의 시대와 비교해, 그리스 문화 등이 네로 대에 로마 사회와 문학 분야에 크게 유행해 종종 은(Sliver) 시대로 언급되기도 한다. 클라우디우스 네로(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가문이 황실을 계승했고, CAESAR가 개인 성씨가 아닌 황제를 뜻하는 또 다른 제호 개념으로 확립된 시대이기도 하다. 물론 두 황제는 태생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직계혈육, 방계혈육이고 가문의 코그노멘이 아우구스투스 생전부터 카이사르이기도 해서, 플라비우스 가의 세 황제와 달리 이 명사를 황제를 뜻하는 제호라고 한 적이 없다. 클라우디우스 치하에서 프린키파투스 체제가 확고히 안착했으며, 가이우스 시대부터 진행된 내각 구성 및 관료제 강화 조치, 이탈리아와 로마 내 인프라 구축 등이 이때 거의 완성된다. 또 가이우스 시대 중반부터 [[드루이드]] 문제 등으로 공론화된 [[브리타니아]] 전쟁과 정복도 바로 이때 벌어졌다. 네로 시대는 이전 세 황제 시대와 다를 것이라는 즉위 첫 원로원 연설로 엄창난 기대 속에 시작한다. 그러나 어린 네로는 모후 [[소 아그리피나]], 스승 [[세네카]]와 근위대장 부루스의 꼭두각시였고, 이들의 야심과 권력 투쟁 속에 밀실정치로 진행됐다. 네로와 소 아그리피나 측의 대립 속에 아우구스투스의 직계 혈육들이 거진 네로 손에 살해된다. 이런 가운데 부루스 사후 근위대장으로 티켈리누스가 임명되고, 네로가 친정을 벌이면서 이전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시대에 벌어지지 않은 황제의 불법 행동을 비롯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고문, 납치, 협박, 증거조작, 위증 등이 매일같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네로가 기독교도들에게 죄를 덮어 씌우고 잇딴 망언을 벌이며 네로의 인기는 전 계층 사이에서 빠르게 식는다. 이후 피소 음모사건, 베네벤툼의 음모, 코르불로 숙청 등이 터지고, 유대전쟁까지 벌어지는데, 친정 직전부터 흥청망청 돈을 써대며 국고를 고갈낸 네로 정부는 병사들의 임금까지 체불한다. 그러다가 갈리아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의 반란을 시작으로 네로는 각 속주 총독들, 군대, [[프라이토리아니]], 원로원 모두에게 불신임을 받고 몰락한다. 네로의 몰락은 로마 제정 사상 첫 황제 탄핵이었고, 원로원의 형식적 권위와 권한까지 침범한 일로 터진 사건이었다. 따라서 네로의 실패는 플라비우스 왕조 창건 후 사태를 수습한 [[베스파시아누스]] 아래에서 프린키파투스가 법제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 자세한 설명과 역사는 [[클라우디우스 1세]], [[네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